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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4, 2015 - Dec 19, 2015
장은의
 
Introduction
Works
 
 
 
장은의, 세 번째 개인전 ‘부재의 감각’
2015. 12. 4 – 12. 20  갤러리 플래닛
 
장은의, 다시-그리다
 
권영진 (미술사)
 
2014년 <청소 1, 2, 3>을 비롯한 회화 연작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장은의가 올해 <이사 1, 2, 3> 연작으로 그 후속편을 선보인다. 작가의 첫 개인전은 2013년 예술공간 플라즈마에서 열렸는데, 이때 전시공간의 특성을 활용한 영상 설치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이듬해부터 시작된 회화는 장은의의 길지 않은 경력에서 일종의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장은의는 미술 내에 새로운 매체 장비의 수용이 적극적이던 1990년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이후 독일에 유학하여 개념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영상 설치작업에 주력했다. 자료로만 남아 있는 작가의 첫 개인전은 장소의 힘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번잡하지 않은 몇 가지 영상장비와 조명장치로 공간을 이동하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시적인 설치작업이었다. 그런데 그런 작가가 이듬해 두 번째 개인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 찍은 사진을 기초로 하여 정직하게 따라 그린 그림들이라 소개하는 장은의의 근작 회화는 누구나 마주하는 일상의 장면이기에 평범하기도 하고,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을 소박하면서 어눌한 붓터치로 희미하게 바랜 듯한 색조로 그려내기에 오히려 낯설기도 하다. 현실의 기록이자 부재의 증명인 사진을 다시 실재하는 물감과 붓터치로 재연하지만,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듯 노르스름한 색조로 옅게 통일된 화면은 아스라한 기억의 잔상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 같기도 하다. 장은의의 그림 속에는 구체적인 사진에서 비롯되는 실재감과 밝은 빛 속으로 산산이 흩어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의 허망한 부재의 감각이 공존한다.
 
작가 장은의의 반전은 별것 아닌 것을 다시 보게 하는 힘, 예술과 일상이 별다르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깨달음, 특별한 것은 평범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성에 기인하며, 그러기에 복잡한 재료나 다채로운 장비, 거창한 주제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평범하며 사소한 일상의 원론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왜 그토록 생경하고 놀라운 지, 장은의의 어눌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그림 앞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머물게 된다. 얇고 옅게 사진을 복기하는 회화로 일상의 기억은 비로소 제자리를 부여받거나, 혹은 충분히 되새기고 기념하는 회화의 붓질을 통해서 우리의 기억에서 온전히 사라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사하는 과정에 찍은 사진이 장은의의 두 번째 개인전과 세 번째 개인전을 잇는 연결고리다. 사실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학기마다 넘쳐나는 책을 정리하며, 잠시만 소홀하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는 메일함을 비우면서, 우리 모두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들이고 가꾸었던 물건들을 비우고 정리하는 과정은 말끔히 비워낸 빈 옷장, 반들반들 닦아 놓은 냉장고, 프레임만 남은 액자를 마주하는 순간, 평범한 일상이 정지되고 존재는 부재로 바뀌며, 현실은 소멸로서의 실체를 드러낸다.
 
사진에서 출발했지만, 그 사진을 다시 그리는 장은의의 회화는 그녀가 특기로 하는 영상의 감각을 닮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잊힐 듯 잊히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장은의의 감각은 이미 영상 설치 작업에서 주요한 근간이 되었다. 깨진 달걀 이미지 위에 에베레스트 산의 형상을 덧그리고, 긴 화살의 형태가 된 못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고, 사랑에 관한 다양한 단상들을 작은 설치작업으로 끌어모은 후 선풍기 바람에 날려 보내며, 빛을 받은 프리즘이 만들어내는 무지개의 색을 따라 칠하는 장은의의 제스처는 이미 ‘그리기’로 대변되는 예술의 오랜 기원을 매만지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유희 같은 사랑과 만남, 애달픈 조우와 빛이 사라져도 길게 남은 그 그림자는 삶과 예술에 대한 장은의의 감회를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형상화했었다. 그런 설치와 영상의 감각이 회화에서는 빛을 머금은 듯 얇고 옅은 그림의 층으로 대체되었다.
 
장은의는 애초의 출발점에 다시 서고 싶은 것 같다. 외곽선을 넘지 않고 주어진 면을 잘 칠하면 되는 색칠공부의 즐거움이나 대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소박한 성취감이 미술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인생의 굴곡을 한 단계 거친 시점에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평소에 찍은 사진을 정직하게 따라 그리겠다는 장은의의 생각은 매일 그림을 그리고, 그것으로 예술을 실천하며, 그렇게 실천하는 예술이 일상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사 1, 2, 3>은 삶의 한 시기를 마치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정리한 채, 말갛게 비워낸 빈 집의 장면을 그렸다. 청소를 끝낸 빈 집에 덩그러니 남은 자전거와 마지막까지 한 구석에 남아 있던 빈 캔버스, 새로 꾸밀 작업실에 놓인 텅 빈 책꽂이, 매일 익숙하게 내려다보던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와 어느 날 그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삽상한 겨울날의 풍경은 일상과 그림 그리기로 다시 삶과 예술을 계속하려는 장은의가 회화로 되새김질하는 기억의 장면들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가 일상화 되면서, 우리는 일상의 많은 장면을 사진으로 담지만, 넘쳐나는 디지털 이미지는 일상을 샅샅이 기억하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무의미한 기억의 장면 속에 부유하게 만든다. 기록의 과잉은 기억의 무상함으로 이어지고, 무수한 이미지는 컴퓨터 저장소에 넘쳐나다가 어느 날 디지털 효과음과 함께 삭제될 뿐이다. 장은의는 그중 각별한 것을 다시 불러내서 유화 물감으로 다시 그린다. 일상의 기록 중에서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풍크툼의 순간을 소환해 내고, 그것을 얇고 섬세한 붓질로 화폭 위에 옮겨 그린다. 색칠공부처럼, 걸작의 모작처럼, 장은의는 삶의 의미심장했던 순간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고스란히 따라 그리는 방식으로 회상하고 추념한다. 사진에 담겨 있는 통렬했던 삶의 순간은 그림으로 다시 그리는 과정을 통해 옅은 파스텔조의 장면으로 되살아나고, 두 번 세 번 다시 그리기로 나들나들 닳도록 되새긴 그 장면은 비로소 온전한 기억 속으로 되돌아간다.
 
영상작업에 익숙하고, 영상시대에 살고 있는 세대답게 장은의가 다시 그리는 회화는 영사기로 스크린에 투사하는 장면처럼 아련하고 반투명하다. 사진으로 기록한 분명한 삶의 기록이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서 기억 속에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삶의 편린들이 얇고 투명한 막처럼 화면 위에 떠오른다. 한순간에 사라질 것 같은 그 기억의 순간을 작가는 얇고 가벼운 화면으로 회상하고 붙잡아 둔다. 오후의 석양빛처럼 노르스름한 반투명의 막으로 재연된 기억의 순간들은 작가가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잊히지 않는 것, 지나갔다고 생각했으나 지나가지 않는 것을 곱씹는 작업이다.
 
다시 그리기 시작한 장은의의 삶과 작업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오래 되새기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작가는 그림으로 일상을 지탱하고 그러한 일상이 그녀의 창작을 지탱할 것을 믿고 있다. 말끔히 비워낸 빈 방에 남아 있는 캔버스, 새롭게 채워 넣을 빈 책꽂이가 장은의를 기다리고 있다. 잃은 것과 얻은 것, 버린 것과 남은 것, 살아온 날들과 살아야할 날들은 기억의 장면을 떠올리고 다시 그리는 과정을 통해 충분히 숙고되었다. 기억 속에 떠도는 삶의 단상을 불러내 오래도록 되새기고 쓰다듬는 붓질을 통해 장은의는 묻었던 기억을 되살려 현재의 의미를 단단히 했으며 스스로 그간의 삶을 치유했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기억의 잔상을 가볍고 투명한 막처럼 홀가분하게 날려버릴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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