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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이면 The Other Side of Landscape
Nov 7, 2014 - Dec 5, 2014
이강원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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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드러내는 ‘풍경조각’

‘풍경조각(Landscape Sculpture)’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로 시작해보자. 사람이 바라본 자연의 모습이나 특정한 정경 및 상황을 가리키는 ‘풍경’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조각이 아닌 회화(사진)와 짝을 이룬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풍경을 재현하기에 적합한 매체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평면적 이미지로서의 회화(사진)지, 시각보다는 촉각이, 이미지보다는 물질이 우선시되는 입체적 형태로서의 조각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조각가 이강원은 자신의 작업 전반을 가리켜 ‘풍경조각’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풍경조각이란 무엇이며 왜 풍경화(풍경사진)가 아닌 풍경조각인가? 그리고 풍경조각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은 그 의미와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 소요될 것이며 그것이 곧 작가 이강원의 작업세계에 관한 해석과 조명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각예술의 전통 장르로서 풍경화(풍경사진)를 논할 때 풍경은 원근법적 시각체계에 따라 조직된 하나의 평면적 이미지를 의미한다. 즉 일정한 시점에서 본 공간과 그 속의 대상들을 멀고 가까움에 따라 하나의 평면에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풍경을 대할 때 우리는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한 곳에 멈춰서 눈앞의 장면을 한 장의 시각적 이미지로서 각인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 이곳저곳을 살피고 가까운 사물들을 만져보거나 공기의 냄새를 맡아 그곳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그렇게 받아들인 풍경을 저마다의 기억으로 다르게 간직한다. 다시 말해 장르의 문법이 아닌 실질적인 풍경은 시각에 의존한 평면적 이미지가 아닌 전(全) 감각에 의한 입체적 기억인 셈이다. 이강원이 조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풍경은 이러한 의미에서의 풍경이다. 그리고 풍경을 조각화하는 데 있어 그만의 고유한 방식이 존재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특정한 풍경의 부분들을 대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크기로 형상화하고, 그러한 풍경의 파편을 재조합하여 다시금 새로운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풍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조각들(pieces/sculptures)’은 경우에 따라 특정한 형상을 그대로 본뜬 것이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에 따라 빚어진 형상이기도 하며, 그저 전체적인 형태를 이루는 비정형의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두는 각각의 개별 조각으로서 형태적 완결성과 물질성을 지니는 동시에, 한 데 모이면 물질 덩어리들의 집합이자 하나의 이미지로서 새로운 풍경이 된다. 이것이 이미지를 물질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고유한 ‘풍경조각’이다.
‘풍경조각’이라는 특이한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실질적인 제작 방식에 있어 작가는 조각이 지닌 매체적 본성을 고수한다. 조각을 ‘구르기’와 ‘흐르기’라는 자연현상에 빗대어 설명하는 작가의 비유는 꽤 흥미롭다. 단단한 재료를 깎고 새기는 ‘조각’이 바위 덩어리가 구르면서 둥글고 작아지는 과정과 같다면, 무른 재료를 빚고 덧붙이는 ‘소조’와 그렇게 만든 형틀에 액체 상태의 물질을 부어 굳히는 ‘주조’는 각각 흐르는 물의 힘으로 진흙이 퇴적되고 뜨거운 용암이 지표를 따라 흐르며 굳어져 가는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구르고 흐르는 자연스러운 원리에 자신의 손을 맡기어 작품을 만들어 왔다. 전작(前作)들이 그 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가공고무(rubber sponge)’를 깎아서 만든 작가의 여러 사적인 물건들을 전시장 바닥에 배치하고 제작과정에서 나온 검은 고무가루로 각 사물의 그림자를 드로잉 하여 전체 풍경을 만들었던 <선라이즈-선셋(Sunrise-Sunset)>(2005)은 작가의 대표적 ‘구르기’ 작업이다. 작가의 방 안 풍경이 그 안에 놓여있던 기억 속 물건들로 조각되어 각각의 그림자와 함께 전시장에 재배치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풍경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것은 밝은 빛이 한 쪽에서 들어와 어두운 공간을 비칠 때처럼 사물들은 한 방향으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실제로 전시장 공간은 매우 밝고 사물과 그림자는 모두 검은색인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게다가 이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풍경에서 그림자는 사물이 만들어낸 이미지인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놓은 실질적인 물질이라는 사실이 풍경의 역설을 배가시켰다. 한편 좀 더 잘 알려진 작가의 ‘오일파스텔(oil pastel)’ 작업은 ‘흐르기’를 대변한다. 소조와 주조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가의 ‘흐르기’ 작업은 특정한 색의 오일파스텔(흔히 말하는 크레파스)을 열로 녹인 후 미리 만들어 놓은 형틀에 부어 굳힌 여러 다른 모양의 조각들을 좌대 위에 늘어놓음으로써 새로운 단색의 풍경을 만든 것이다(오일파스텔에 있는 원 안료의 색으로 인해 채색의 과정 없이도 색을 지닌 조각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이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스카이라인(Skyline)>(2005)이나 <숲(Forest)>(2006)과 같은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전체적인 윤곽이 강조된 수평의 풍경 이미지이지만, 전체 풍경을 구성하는 개별 조각들은 유물의 파편이나 미사일과 같이 뜻밖의 인공물(artifact)을 나타내는 물질 덩어리들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들로 채워진 세계를 자연의 풍경으로 비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강원의 ‘풍경조각’이 지닌 이러한 특징적인 면모들은 전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풍경의 이면(The Other Side of Landscape)>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 작업들은 큰 틀에서는 이러한 일관성을 유지하되,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이 한층 깊고 넓어졌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소조와 주조 중심의 ‘흐르기’ 작업들에 집중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기존 작업과의 역치와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전체적인 작업세계의 외연과 함의를 확장한 것이다. <숲(Forest)>(2014), <대지(Land)>(2014), <물(Water)>(2013) 등의 대표작들은 일단 제목과 전체적인 풍경 이미지에서는 포괄적인 의미의 자연을 연상시키지만, 풍경을 구성하는 개별조각들의 형상은 우리가 흔히 주변의 일상 속에서 접하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다루고 있다. 예컨대 <숲>은 덩굴식물의 줄기, 나무, 꽃 등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실내공간의 몰딩장식이나 벽지의 무늬를 형상화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지> 역시 바위, 자갈, 모래 등의 형태를 본 따 만든 벽지나 마루, 타일 등의 인테리어 자재를 작가의 다양한 시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작가는 살던 집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건축 폐기물들로부터, 우리의 주거공간을 구성하는 상당수의 재료들이 자연처럼 보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삭막한 도시 환경에서 주거공간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실내장식에마저 자연을 본 딴 마감재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의 풍경을 실내로 들이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시도를 거꾸로 뒤집어, 그러한 실내 풍경의 파편들로부터 숲이나 대지와 같은 자연 풍경을 만들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어쩌면 위로일지 모른다. <물> 역시 더 깨끗하고 맑은 물로 보이도록 생수병이나 유리컵에 새겨진 결정(結晶) 모양을 비롯해 물을 상징하는 인위적인 형상들을 여러 조각들로 만들어 또 다른 하나의 풍경이미지를 만든 작품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은 각각 숲, 대지, 물을 떠올릴 수 있는 초록색, 황토색, 흰색 계열의 단색 풍경을 구성한다(전작인 오일파스텔 작업과 달리 채색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전체 풍경의 윤곽과 개별 조각들의 형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실내 풍경의 파편들로 만든 작가의 새로운 풍경이 전체적으로 자연으로 인식되도록 함으로써 인공과 자연 사이의 모호함을 배가시킨다. 한편 소조와 주조라는 제작 기법은 그대로 유지하되 (가공고무나 오일파스텔과 같이 조각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가벼운 재료를 사용한) 전작과 달리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레진 등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실제로는 지극히 가벼운 대상들을 역으로 묵직함이 느껴지는 조각 작품으로 전치시켰다. 실제 스티로폼 조각들을 한 데 쌓아 레진으로 주조한 <복원된 섬(Restored Island)>(2012)이라는 작품에서는 이러한 가벼움과 무거움, 덧없음과 영원함의 모순적 공존이 미학적 희열로 느껴질 만큼 극에 달한다. 이렇듯 작가의 근작에서 시도된 풍경들은 단순히 자연의 경치나 개인적인 공간에 그치지 않고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환경에 대한 관찰과 비판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제에 부합하도록 형식적인 측면 역시 탄력적으로 변모하였다.
오늘날 전통적인 예술매체로서 조각은 회화만큼이나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기 쉽지 않다. 매체와 형식에 천착하자니 모더니즘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고, 소재와 주제를 확장하자니 매체적 속성이 발목을 잡는다. 이강원은 이처럼 쉽지 않은 조각의 길을 비교적 현명하게 헤쳐 나가고 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매체에 대한 기본기와 상반된 것들 사이에서의 균형감이다. 그의 작업 전반에는 수없이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묘한 긴장을 이루며 공존한다. 그의 작품들은 물성이 강한 조각인 동시에 이미지로서 풍경이며, 그런 이유로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이다. 또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지만 각각의 부분들도 독립적으로 완결성을 지니며, 그러한 개별적인 조각과 전체적인 풍경의 이미지는 구상과 추상, 실제와 상상, 재현과 표현을 넘나든다. 또한 일상적인 재료로 조형성이 강한 비정형의 풍경을 만들었다가, 전통적인 조각 재료로 일상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구체적인 풍경을 만드는 식으로 일상과 예술을 사이에 두고 재료와 소재가 유동적으로 전치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구르기’와 ‘흐르기’라는 조각의 본질에 충실한 그의 손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고수하며 그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란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 그대로의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관계들로 이루어지며 예술은 결국 그러한 인간과 세계 사이의 상호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강원의 ‘풍경조각’은 이러한 예술적 성찰의 과정이자 결과로서 여전히 새롭게 갱신되고 지속되고 있다.

신혜영 |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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