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인간은 늘 속하지 않은 멀리 있는 곳을 꿈꾸고 그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막상 별 것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그 차이를 직접 보고 경험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는 인간에게 늘 새로운 이상을 꿈꾸게 한다.
이경미 작가도 마찬가지다. 유년시절 추억과 개인사, 인류 역사와 문명에 대한 비전 을 주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회화작업으로 시도했던 그가 이제 눈을 돌려 우주로 나갔다. 우주와 관련된 생각과 감정은 어린 시절 달을 보며 가졌던 호기심과 동경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어렸을 적 오빠의 손을 끌며 달을 잡으려던 유년시절을 추억한다.
“우리를 따라오던 달을 처음 보았을 때는 지난 성년의 날들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 때 손끝에 닿을 듯 잡히지 않던 달에 대한 애틋함이 길고, 또 길게 지속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미지의 땅’도 ‘성장과 성숙’도 찬란함도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은 그때의 밤하늘의 달빛 같은 것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시 제목인 ‘시차(parallax)’는 천문학에서 별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으로 한 천체를 다른 두 지점에서 관찰했을 때 생긴다. 즉, 보는 시점에 따라 발견되는 대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경미 작가는 시차를 극복하고 달을, 시간을 붙잡아 보려 한다. 이상적인 대상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실제생활도 그러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정착하면서 한국에서 그려왔던 이상적인 미국과 다름을 발견한다. 마치 우주인들이 꿈꿨던 미지의 달과 실체로 경험한 달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생각을 담은 ‘달(Moon)시리즈’는 지구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달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또한 설치 작품인 ‘변방 위의 유토피아’ 역시 이 같은 인간의 노력과 그 한계를 담는다. 대기권과 지구 내부 구조를 그린 입체 작품과 이를 바라보는 망원경, 그리고 이들 사이에 놓인 벼 낟알 더미로 구성된다. 대기권과 지구 내부 구조는 세밀하게 그려 멀리선 보이지 않지만, 벼 더미 때문에 거리를 두고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연출한 작가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경미 작가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시차를 활용해 별의 거리를 계산해 내는 인간의 시도는 무모하다. 그 결과가 때로는 허망할 때도 있지만, 놀라운 결과를 낳을 때도 있다. 늘 이상을 꿈꾸고 그에 다가가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인류의 역사임을 일깨워준다.
지난 14일 문을 연 이경미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 ‘시차’는 서울 강남구 논현로 갤러리플래닛에서 내달 20일까지 열린다. 우주를 주제로 작업한 회화 20여점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