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post)가 어떤 명사 앞에 붙는 경우, 그 명사는 이전의 존재 양태를 벗어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접두사는 이미 기존 성질을 달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포스트휴먼,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미디어 등이 그렇다. 회화의 역사를 보면 여러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전회를 겪었다. 사진기 발명 이후로는 변화의 많은 경우가 기술의 영향 하에 추동되었다. 직접적인 영향 외에도 인쇄 기술, 인터넷의 발명 등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장르와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동시대의 회화 역시 인간 삶의 방식을 현저하게 바꿔놓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인한 지각 방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관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매체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제 회화는 단순히 외부 세계를 재현하거나 내적 감정의 표출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 자명하다.
그렇다면 회화는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고, 어떻게 다른 장르와 매체를 주제와 형식적 측면에서 연결짓고 있는 것일까? 한편, 변화해온 회화에서 여전히 배제될 수 없는 것은 예술가의 신체적 개입인가?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몸의 제스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번 전시는 강희정, 박경률, 윤향로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강희정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인덱스로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과 텍스트의 거대한 풍경이다. 작가는 책을 만들기도 하고 책을 해체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 중 <그림 인덱스> 연작은 책이 작품이자 작업일지가 된다. 이것은 작품의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작업을 준비하고 제작하는 단계에 대한 설명과 사이사이 생겨난 단상들을 하나로 엮은 오브제 형태의 작품이다. 또 다른 경우에서는, 수집한 책, 화집에다가 맥락을 벗어난 작가의 글을 넣거나 알 수 없는 이미지를 첨부하여 기존의 그림과 글의 일대일 관계를 방해하기도 한다. 작가는 기표가 기의에 닿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책 속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상호보완적인 설명에 완벽하게 다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신을 개입시킴으로써 보여준다. 책을 매체로 한 강희정의 회화는 평면이자 입체이다. 평면은 입체로 연결되고, 입체는 다시 평면으로 돌아온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직육면체 형태의 입체 작품 역시 계획적인 삼차원 형태에 대한 구상에서가 아닌, 6개의 평면(또는 이미지)에 대한 접근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작품은 사진을 프린팅해서 상자에 붙인 것으로, 회화의 집적이자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볼 수 있기에 회화적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강희정의 작업은 이차원의 평면과 삼차원의 입체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의 유연한 운동과 사유가 작품을 탄생시킨다.
박경률은 조각적 회화를 시도한다, 조각적 회화는 회화의 질료적 측면의 물성, 신체의 붓질 행위, 그리고 여기에 생성된 회화적 공간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환상(fantavision)이라는 미적 경험, 이 세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형태의 시도를 통해 이미지 중심의 시대에서도 과연 회화는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서 환상은 재현된 이미지의 환영이 아닌 회화적 공간에서 생성되는 매순간의 이미지들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작가는 매체적 속성을 탐구하면서 직관적인 선택에 의한 회화적 제스쳐, 예를 들어 붓질과 같은 신체적 행위를 통해 사유를 발생시킨다. 작가는 이를 위해 대기원근법에서 환영의 공간을 만드는 방식 그리고 헬렌 프랑켄탈러의 얼룩기법(Soak-Stain Technique)을 재적용하여 실험하기도 한다. 특히 후퇴와 수축의 효과를 가져오는 여러 종류의 푸른색의 사용은 회화적 공간의 생성을 더욱 촉발시킨다. 박경률의 회화는 재현으로서의 환영이 아닌, 물성과 행위만으로 감각과 사유의 공간을 생성하고 확장시키며 나아가 차원을 전환시키고 이로써 환상이라는 새로운 미적 경험을 형성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윤향로의 작품은 2016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스크린샷(screenshot)’ 연작 중 최근작들이다. 스크린샷은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현대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방식의 순간 포착 이미지이다. 작가는 마법소녀가 등장하는 환타지물의 애니메이션에서 서사를 전혀 감지할 수 없는 배경 부분을 추출하고 그것을 컴퓨터 그래픽 툴을 사용하여 변형, 재구성한 후 캔버스와 물감으로 물질화된 이미지로 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물질에서의 물질로의, 원저자 주체에서 작가 주체로, 애니메이션에서 회화로, 서사가 있는 재현에서 추상으로,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탄생 과정을 겪은 윤향로의 작품들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 외에도 그 속에서 파생된 몇 가지 세부적인 질문들이다. 그것들은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에서 가상의 서사를 현실 속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익명 속 저자는 죽은 것으로 판명된 것이 맞는지, 예술의 고유한 영역은 여전히 수호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가상과 현실이 그물처럼 얽힌 세계 속에서 우리가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지켜내야 할 가치가 존재하는지를 묻고 있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회화라는 장르를 모색하고 있지만, 신체의 개입이라는 공통된 지점에서 모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을 위시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세상을 지각하고 그것을 재구성과 해체를 거쳐 인지한 후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순환적 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동시대의 회화 작가는 이러한 달라진 지각, 인지, 소통 방식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고 그 원리를 회화기법에 적용하고자 하지만, 예술가 신체를 통한 직접적 발현이라는 오랜 화두를 여전히 붙들고 있다. 이들의 작업을 현재의 시점에서 분명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다. 다만 한 차원 너머의 새로운 존재 방식의 회화, 포스트 회화를 탐색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